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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정옥의 미리내 집 오늘도 나를 지키며 우아하게 산다

이사/인테리어 위한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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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 에디터2020년 05월 02일

라이프스타일은 ‘결’이다. 요즘처럼 시국이 불안하고 일상이 위협받을 때 그 결은 흔들리기 십상이다. 도예가 김정옥의 라이프스타일은 중심이 확실해 보였다. 원하던 것과 원하는 것이 명확했고 그걸 갖기 위해 하루하루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일상과 가치관, 덤벙분청 작업도 마찬가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과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하는 데서 오는 우아함이 있었다.





김정옥 작가는 “야, 세다” 하고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외모를 평가했지만, 그는 전혀 ‘센’ 사람이 아니다. 정확할 뿐. 자신의 일과 일상에도 그렇듯 정확한 그는 몇십 년째 아침 10시경 일을 시작해 저녁 6시면 작업복을 벗고 일과를 마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깨끗한 작업실은 촬영을 위해 급히 치운 것이 아닌 매일의 모습이다.


“기꺼이 밥을 지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경기도 안성 미리내예술인마을에 있는 그의 거처는 작업실과 집으로 나뉜다. 몇 채의 집이 띄엄띄엄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펼쳐져 눈이 다 시원해지는 언덕. 아래쪽에 쇼케이스 겸 작업실이 있고, 그 위로 단정한 사각형 집이 펼쳐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빛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꽃향기보다 좋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김정옥 작가는 손님이 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 ‘밥’을 내놓는 걸로 유명하다. 매년 5월이면 오픈 스튜디오를 열어 사람들과 비빔밥도 먹고 스파게티도 나누며, 삼계탕도 끓인다. 방배동 안수복 선생님에게 요리를 배웠는데, 집중해서 요리하는 것도, 본인 그릇에 담아내는 것도 즐거워 계속하다 보니 취미 생활 을 넘어 일상의 약속이 되었다. 오늘의 메뉴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멸치랑 다시마,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낸 국수를 만들 건데 죽방멸치라는 게 중요해요.(웃음) 불고기 양념한 쇠고기에 파를 말아 넣은 쇠고기파 마키도 낼 거예요.” 국수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레시피를 물었다가 설명을 듣자마자 포기했다. “멸치랑 다시마를 하루 전부터 찬물에 불려요. 다음 날 건더기를 건져내고 그 물에 표고버섯을 넣고 은근히 끓여요. 표고버섯 향이 우러나오게 하는 거죠. 집간장과 소금으로만 간하고 양념장은 육수 우릴 때 쓴 표고버섯이랑 파, 마늘을 다져서 만들어요.” 음식 나누는 즐거움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그 스스로 내린 답이자 다짐 같은 것이다. “그 집에 가면 집밥을 준다, 그 사람은 밥을 꼭 해준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좋은 그릇에 좋은 음식을 담아내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와인을 마시면서 서로 좋잖아요. 음식을 함께 즐기는 집이 행복이 가득한 집 아니겠어요?”

늘 웃음과 음식이 넘치는 집 같지만 사건 사고도 많았다. 이 곳으로 이사 온 다음 날에는 2층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지면서 큰 부상을 입었다. “갈비뼈 네 대가 부러지고 손목을 삐었어요. 그러니 작업을 못 하지요. 그렇게 넘어질 때 마치 집 어딘가에 있는 축대가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 집의 텃세였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집의 신이 장난을 쳤다는건데, 나는 그 말이 유독 재미있었다. EBS <건축탐구 집>에 출연 중인 건축가 임형남 소장은 한국에서 단독주택을 가장 많이 지은 사람 중 한 명인데, 그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정령이든 귀신이든 집에는 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땅은 지질학적으로 노년기에 속해 역사가 긴 만큼 귀신도 많단다. 명당, 흉가, 흉당 등에 다 가봤는데, 최근에는 평상복을 입고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이는 귀신도 봤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자 김정옥 작가가 말을 보탠다. “이 집을 파신 분하고 통화를 했더니 중정에 뭐를 놔뒀냐고 묻더라고요. 큼지막한 돌로 좀 기운을 눌러줘야 한다면서요. 저는 도자기로 만든 빨간색 오리 떼를 놓아두었는데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집에 정이 떨어진다거나 무섭다거나 할 테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혼자 살면 무섭지 않냐? 어떻게 사냐? 묻는 분이 많은데, 제 공간이고 제 물건들이 있는 집이니 그런 건 없어요. 이전 작업실도 모두 울(울타리)도 담도 없는 집이었어요.”




앞쪽으로는 통유리가, 뒤쪽으로는 중정이 펼쳐지는 거실. 오후 2~3시, 화창한 날의 봄볕은 중정 유리를 통과해 거실 마루를 지나 그 앞 통유리까지 긴 광선을 그린다.





꿀맛 같은 잠을 보장하는 1층 한실. 오른쪽 창호 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다.





이사 온 다음 날 미끄러져 넘어졌다는 곳이 바로 저 계단이다.





역시 최소한의 가구만 둔 서재. 창밖으로 자연이 한가득 들어오는 구조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확실히 안다

오리 떼를 놓은 중정은 김정옥 작가가 예전부터 좋아라 하던 개념이자 공간이다. 마당도 되고 정원도 되고 볕의 놀이터도 되는 곳. 보기에 따라 안도 되고 바깥도 되는 그런 공간이 볕을 걸러주고 중첩된 풍경을 만들어 집을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주방이 좁은 이 집을 선뜻 구매한 것도 ‘확실하게 원하던’ 중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가 조남호가 설계한 이 집은 단정하고 심플한 외관이지만 재미있는 공간이 많다. 1층에 있는 한실도 그중 하나다.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로 작은 방. 한지로 마감하고 창호 문을 달아 볕 좋은 날에는 순화된 빛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작은 쪽문은 바깥마당과도 연결된다. 하이라이트는 건물 바깥쪽에서 그 작은 문 위로 올린 지붕. 얇은 철근으로 얼기설기 엮어 간단한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함석판을 올려두었는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김정옥 작가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도시락부터 트레이까지 작품 종류가 다양한 데다 저마다 귀티가 나 코를 박고 들여다보게 된다.




죽방멸치로 육수를 낸 국수와 쇠고기파 마키. 잘 먹었습니다!





음식과 그릇은 그를 설 명하는 가장 확실한 키워드다
중정과 더불어 김정옥 작가가 아끼는 곳은 2층 서재다. 폭이 좁고 긴 테이블과 의자 하나뿐이지만 쉼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곳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으면 창밖 너머 구름이며 소나무 숲이 생생하게 보여요. 멍한 채로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과분한 행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죠. 안마 의자도 없고, 테이블도 크지 않지만 책 한 권 올려둘 수 있으면 충분해요. 잠시 쉬는 거지 아예 드러누워 자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이 정도면 돼요.” 그의 말은 이렇듯 정확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애매한 표현이 없었다. 1층 거실에서 꽤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는데, 양반다리를 하고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자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허리가 아파 자세가 무너지는데, 그는 내내 꼿꼿했다. 식사를 할 때도 무릎을 꿇고 허리를 반듯하게 편 채였다. 혈색도 좋았다. ‘6학년’이 된 지 오래지만 눈가에 주름 한 줄 없었다. 그걸 알아챈 후 던진 내 질문의 핵심은 어떤 생각과 루틴으로 살기에 그런 자세와 혈색을 지닐 수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고양이 밥을 주고 가톨릭 신자니까 잠시 기도를 해요.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아래쪽 작업실로 가 일하고, 점심밥을 먹으러 다시 올라와 요. 식사를 한 후에는 다시 작업실로 내려가요. 간혹 시간을 넘길 때도 있지만 오후 6시가 되면 작업복을 벗어요. 반복적인 삶이지만 생각해보면 좋은 것만 하는 것 같아요. 먹고, 듣고, 걷고, 자고, 일하고. 불필요한 건 갖지 않고 괜한 곳에 기웃거리지도 않아요.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사람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마음은 차분한 일상의 반복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영화 <위대한 침묵>을 거론했다. “알프스 깊은 계곡에 묻힌 수도원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보고 ‘일상의 숭고함’ 같은 걸 느꼈어요. 밥 짓는 사람은 계속 밥만 짓고, 옷 짓는 사람은 계속 옷만 만들어요. 마지막 부분에 수도사들이 썰매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쩌면 그렇게 해맑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그들의 단순하고 고요한 삶을 생각하면 저렇게 웃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지요. 제가 금 밟으면 죽는 타입이에요. 이태원에서 탱고도 배워보고, 내 안의 열정같은 걸 불태워서 접신한 것 같은 상태에서 뜨겁고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예술은 다 파격이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또 그건 아니거든요. 오래가려면 성실해야 하고, 성실하려면 일상의 루틴이 잡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다음부터는 쉬웠어요.”




다양한 기법과 문양, 형태로 아름다운 ‘합’들은 분청 특유의 자유분방함에 세련미까지 갖추었다.





저 문을 열면 작가가 침실로 사용하는 작은 한실이 나온다. 재미있고 살뜰한 설계. 건축가 조남호의 디테일이란 이런 것이다.





중정에 풀어놓은 빨간 오리 떼. 도자기로 구워 만든 것들인데 목의 움직임과 몸짓이 진짜처럼 생생하다.





아래채가 작업실, 위채 흰 건물이 집이다.
세련되고 호방한 미감의 작품들
일상에서는 금을 넘지 않을지언정 작업에서는 경계 없이 활달하고 자유분방하게 움직인다. ‘활달한 기상’이 특징인 덤벙분청의 매력을 극대화한 작업이랄까. 특유의 매력이 넘치는 작품은 역시 그릇이다. 청화 안료로 기세 좋게 포도문을 그려 넣은 분청 항아리는 씩씩하고 질박한 기운이 남달라 한참을 보게 된다. “청화백자는 많지만 분청사기에 청화 안료로 그림을 그린 작품은 옛 문헌에도 없어요. 옛날에는 푸른 안료가 값비싼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백자에만 쓰기에도 모자랐을 거예요. 몇 년 전 중국 도자기의 고향이라 불리는 징더전景德鎭에서 열린 <도자천년>이란 전시를 보고 청화의 매력에 빠졌어요. 이후 징더전에서 계절학기로 수업을 듣고 동양화도 따로 배웠어요. 중국은 흙이 좋아 초벌을 안 한 태토에 그림을 그리니 수채화처럼 정교하게 그릴 수 있지만, 한국은 초벌을 한 후 그림을 그려야 하니 쉽지가 않아요.”

그의 작업은 시간이 배로 소요된다. 작품의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기 위해 작은 항아리도 상하부를 따로 만들어 달항아리처럼 합체하고, 저마다 미묘한 깊이의 색감을 살리기위해 어렵게 구한 콩깍지재를 유약 재료로 활용한다. 흙도 청자토, 산청토, 옹기토 세 가지를 섞어 쓴다. 온도를 높이 올려 제작 시간을 단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귀티나 우아함을 느낀다면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제대로 매듭짓는 과정에서 심지 같은 것이 쌓인 덕분일 것이다. 김정옥 작가는 꽃 피는 5월에 오픈 스튜디오를 열 계획이다. 조은숙갤러리에서 열리는 <나만의 도시樂>전, 6월 밀라노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공예전에도 참여한다. 그를 만나고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이 어떤 기운을 받고 느낄지 알 것 같다.



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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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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